1 대 1,000.
일본 경찰 1,000대 1로 맞서 싸운 사람.
바로 김상옥 의사.
나무위키 자료 참조.
https://namu.wiki/w/%EA%B9%80%EC%83%81%EC%98%A5
김상옥 의사
1890.1.5~1923.1.22(향년 33세)
"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.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 만납시다.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"
- 상하이를 떠나면 김상옥 의사가 남긴 말.
- 서울효제초등학교에 이 어록의 비문이 있음.
- 생전 별명은 '동대문 홍길동'이었다고 함.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하는 기마경찰을 맨손으로 때려눕혀 검을 빼앗았다고 함. 실제로 이 검은 독립기념관에 보관 중임.
- 1923년 1월 12일 밤 김상옥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함.
- 의거 당시만 하더라도 누가 범인인 지 갈피를 잡지 못함.
- 그러다 1월 17일 김상옥의 매부 고봉근의 집이 경찰에게 탐지됨(행랑방에 있던 여자가 종로경찰서에 있던 친정오빠에게 밀고)
- 20명의 무장경찰에게 포위되었으나 김상옥은 단신으로 두 손에 권총을 들고 총격전을 벌임.
- 종로서 유도 사범이자 형사부장인 다무라 사살
- 이마세와 우메다 경부를 사살. 가옥의 옥상을 뛰어다니며 산으로 탈출, 스님에게 승복과 짚신을 빌려 산을 내려옴. 이 때, 짚신을 거꾸로 신고 내려옴(발자국이 반대 방향으로 향하도록.)
- 효제동 이혜수의 집에서 은신하며, 다음 거사를 준비중이었음.
1월 22일 새벽, 은신처 노출됨/ 새벽 다섯 시 반 시내 4곳의 경찰서에 총비상령 발동.
- 기마대와 무장 경관 400명이 효제동 일대를 포위. 왜경 결사대는 지붕을 타고 집 안으로 침입.
- 벽장안에 숨어 있던 김상옥은, 구라다 경부가 들어와 벽장 문을 열자, 가장 먼저 그를 사살. 그리고 벽을 뚫고 옆집으로 피신.
- 이후 담벼락에 기대어 권총 2자루로 무려 3시간 반 동안이나 총격전을 벌이다 총알마저 떨어지자 벽에 기댄 채로 "대한 독립 만세"를 외치면서 마지막 1발을 스스로의 머리에 쏘아 자결해 순국함.
- 순국 시 눈을 뜬 채로 사망하여 그의 시신을 본 졸개들이 두려워하여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고 함. 손에는 총을 쥐고 있었던데다, 눈까지 부릅뜨고 있으니, 일본경찰은 다가가지도 못하고 김상옥 의사의 모친을 불러 생사를 확인하게 했다.
- 시신을 수습 후 알아보니, 자결에 사용한 한 발을 제외하면 열 발의 총알을 맞았다고 함. 3시간 반 동안, 수백여 명의 추격을 받으며 단 10발을 맞은 것도 대단하며, 10발의 총알이나 맞은 상태로 버틴 것도 대단함. 신념은 총알로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.
김상옥 의사가 전투에서 사용한 권총. 개조형으로 추정.
- 보통은 독립투사들이 벌인 의거를 기리는 행사를 할 때 '의거 기념식'이라는 표현을 쓰고 사망자들은 순국 '추모식'이라는 용어를 씀. 그런데 김상옥 의사는 사망일 1월 22일을 '시가전 승리 기념식; '독립활동 기념식'이라는 용어를 씀. '시가전'이라고 칭송될 만큼 혁혁한 공을 세운 데다가 당신 일본에 안겨준 충격이 엄청났기 때문임. 김 의사의 공으로 저항의지를 되찾고 이후 항일 무장투쟁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평가됨.
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에는 김상옥 의사의 동상이 있음.
감사합니다.
잊지 않겠습니다.